브랜드 이야기

#22. 프리미엄 골프클럽의 역사 맥그리거



맥그리거는 현존하는 골프클럽 중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입니다. 



지금은 골프사업부를 정리한 스팔딩과 함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 후반까지 100년 넘게 미국을 대표하는 골프클럽 제조사라고 할 수 있지요.


1820년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두 형제에 의해 창업된 이 회사는 원래 신발 제작에 필요한 목형을 가공하고 제작하는 업체로 출발했습니다. 





나무로 제작된 신발목형



골프클럽제작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이 회사는 한 세대를 거친 1870년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맥그리거와 애드워드 캔비가 투자자로 합류하면서 골프클럽 제조사로 변신을 시작합니다. 


회사의 사명도 투자자로 참여한 존 맥그리거의 이름을 따서 맥그리거로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죠. 원래 사명은 데이튼 라스트 컴퍼니였습니다. 




20세기 초반 맥그리거 골프 공장 



운도 따랐는데 때마침 같은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 프로골퍼협회(PGA) 초대회장을 역임했던 로버트 화이트의 도움이 크게 작용합니다. 



골프클럽을 제작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무목형을 능숙하게 가공하면서도 생산능력이 뒷받침 되었던 점을 그가 눈여겨 봐왔던 것이었죠. 


보유하고 있던 나무목형 가공기술은 그 즉시 우드 클럽제작에 적용이 가능했고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광활한 대지에 천혜의 날씨환경을 갖고 있던 미국은 20세기 초기 유럽이민자들의 주도로 골프가 급격히 저변을 확대하는 중이었고 골프장비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The Greatest Name in Golf (골프계의 거인 맥그리거)



클럽장비 제작을 시작하고 10년 만에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한 골프클럽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맥그리거는 스팔딩골프, 윌슨골프와 함께 당시 미국의 3대 골프클럽 제조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초기 맥그리거 아이언(니블릭)





클럽 제작사로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맥그리거는 1920년대 업계 최초로 스틸샤프트가 장착된 클럽을 선보이면서 골프의 역사와 판도를 뒤바꾸게 되는데..

금속샤프트는 히코리나무로 되어있었던 샤프트보다 내구성이 좋았고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클럽제작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스틸샤프트가 장착된 클럽은 균일한 성능을 냈고 이것이 정확함을 기하는 투어 프로들에게는 가히 혁신적인 성능개선으로 다가왔던 것이죠. 


심각했던 대공황 후유증으로 파산직전까지 내몰렸던 맥그리거는 최고 경영주였던 애드워드 캔비의 죽음으로 야구 장비를 생산하던 골드스미스에 매각된 뒤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 당대의 투어 골퍼였던 토미 아머가 합류하면서부터 투어 프로들과의 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토미 아머(Tommy Armour)



메이저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하며 이름을 날리던 토미 아머의 적극적인 클럽개발에 이어 바이런 넬슨, 지미 드마레, 벤 호건 등 기라성 같은 골퍼들과 스폰서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면서 맥그리거는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맥그리거의 골프클럽은 윌슨에 이어 두 번째로 4대 메이저 대회를 많이 제패한 장비로 지금 현재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성기 시절 맥그리거를 애용했던 잭 니클라우스나 그렉 노먼등이 포함됩니다. 



청년시절부터 맥그리거를 애용했던 잭 니클라우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골프용품업계를 지배하는 브랜드로서 맥그리거는 업계 최초의 제품들을 꾸준하게 출시했습니다. 


우드 페이스면의 내구성을 위해 삼색의 인서트로 제작하기도 했고 아이언의 페이스면을 얇은 구리막으로 마감해 타구감을 향상시킨 제품도 연이어 선보였죠. 




맥그리거 골프클럽(1957) 



그렇다면 이처럼 잘나가던 맥그리거가 왜 뒤처지게 된 것일까요?  


첫 번째는 1958년 다시 한 번 회사의 주인이 바뀌면서부터입니다. 당구대와 볼링공 등을 생산하던 브런스윅(Brunswick)에 매각된 후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제조공장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력들이 경쟁업체인 아쿠쉬네트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유통의 핵심인력을 비롯해 회사의 중추적인 개발인력들이 한꺼번에 유출된 것이었죠. 


두 번째는 새로운 지배주주로서 회계 관리부터가 엉망이었던 브런즈윅의 경영도 문제였습니다. 


인수 뒤 몇 년간 헤매던 맥그리거 골프는 떠오르는 샛별 잭 니클라우스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비로소 안정화되기 시작했지만 골프업계는 핑을 비롯해 신흥 브랜드가 막 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맥그리거 골프 광고(1967)



핑이 헤드무게를 분산시킨 캐비티 아이언을 최초로 선보이며 아이언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맥그리거는 전통적인 블레이드 아이언에 집착하면서 시장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80년대 나무우드에서 스틸드라이버로 클럽시장의 판도가 근본적으로 뒤바뀌고 있었을 때에도 맥그리거의 대응은 언제나 한 발씩 늦었습니다.     











연도별 맥그리거 아이언


휘청거리며 브랜드가치가 하락하던 맥그리거는 급기야 80년대 초반 잭 니클라우스가 직접 지분을 인수해 지배주주로 등극하며 오랜만에 흑자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 회사의 주인이 핀란드의 아머스포츠로 뒤바뀌면서 100년 역사의 프리미엄 골프브랜드에서 저가의 골프세트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제조사로 전락하고 맙니다. 


잭 니클라우스 뿐만 아니라 그렉 노먼도 한때 대량의 지분을 인수했을 만큼 맥그리거 골프의 지배주주 변천사는 다채로운데 창사 후 현재까지 무려 여덟 번에 걸쳐 주인이 바뀐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악어가죽으로 제작한 그렉 노먼의 맥그리거 골프백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었던 맥그리거 골프였지만 끝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 현재도 꾸준하게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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