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에 나선 골퍼가 플레이를 할 때 사용 가능한 골프클럽은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모두 14개입니다.
이 14개(Fourteen)의 골프클럽을 전면에 내세운 골프 브랜드 포틴은 플레이에서 사용 가능한 클럽의 숫자뿐만이 아니라 최고의 골프클럽을 지향한다는 뜻도 담고 있지요.

포틴(Fourteen)은 일본의 골프 클럽 디자이너이자 설계자인 타카미츠 타케바야시 (Takamitsu Takebayashi)에 의해 1981년 설립된 브랜드입니다.
미국에 핑을 설립한 카스텐 솔하임과 클리브랜드 골프를 창업한 로저 클리브랜드가 있었다면 일본엔 이 타케바야시가 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골프클럽의 개발과 설계에 있어 뛰어난 감각과 아이디어를 지닌 인물이있죠.

타카미츠 타케바야시 (Takamitsu Takebayashi)
1949년생인 타케바야시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요코오상사의 골프 사업부에 취업해 클럽 디자인과 개발 업무를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클럽 제작과 인연을 맺습니다.
목표의식이 뚜렷했던 그는 30살이 되기 전 창업하기로 마음먹는데, 입사 8년 만인 1981년 독립하면서 조촐하게 작은 공방으로 출발합니다.

역대 포틴 클럽 전시관
당시 퍼시몬을 주재료로 우드 클럽 제작을 시작한 타케바야시는 특유의 섬세함과 열정으로 꽤 괜찮은 클럽 제작자로 점차 이름을 알려가기 시작합니다.
드라이버의 소재가 감나무에서 스틸 헤드로 바뀌어가던 80년대 당시 타케바야시는 이미 헤드 체적이 500cc였던 드라이버 모델을 시험 삼아 만들었을 정도로 그는 안목 있는 클럽 제작자였습니다.
포틴 퍼시몬 우드
이후 업계에서 소문난 클럽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타케바야시는 80년대 초반 최초로 중공구조 아이언의 개념을 설계하고 직접 디자인했는데...
수년 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요코하마고무가 보유한 클럽 제조사 PRGR(프로기어)와 협업하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중공구조 아이언 ‘인 테스트’를 세상에 내놓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합니다.
인테스트 아이언
원래 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타케바야시는 고교 3학년 재학 중 골프광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됩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골프로 20대 중반인 1975년 홍콩 오픈 골프 대회에서 최고 아마추어상을 받고 1977년 일본 오픈 골프 대회에서도 역시 아마추어로서 우승할 정도로 남다른 골프 실력도 보유했던 타케바야시는 이 당시 점보 오자키와 한 조로 투어를 치르기도 했는데 엄청난 비거리로 그린을 평정하던 오자키의 모습에 투어프로의 길보다는 제작자의 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는 회사 설립 후 야마하와 프로기어(PRGR), 던롭 골프, 다이와 골프 등과 협업하며 혁신적인 클럽들을 선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각과 경험에 의한 제조방식에서 탈피해 중심 설계, 관성 모멘트 등 클럽의 물리적인 특성을 수치화하고 계량화시켜 클럽 제작에 반영한 디자이너로 그 공로를 인정받습니다.
클럽에 대해 논의 중인 다케바야시
포틴이 내로라하는 일본의 골프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선보였던 클럽들은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 클럽이었던 야마하 SX-25와 1980년대 가장 많이 판매된 아이언으로 기록된 PRGR 500 아이언 시리즈 및 인 테스트 아이언, 세계 최초의 두랄루민 헤드로 제작된 던롭 DDH Super240 드라이버 등이 있습니다.

야마하 SX-25
야마하의 의뢰로 제작한 SX-25 아이언은 투어프로 스콧 심슨(Scott Simpson)이 1987년 US오픈에서 사용하고 우승하면서 포틴은 클럽 디자인 업체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엉뚱하게도 3D 설계기술(CAD)이 등장하면서 타케바야시는 보유한 기술이 고스란히 유출될 수 있는 OEM 생산방식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데...
당시는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 골프 클럽을 설계할 때죠.
금형과 도면을 함께 제공했던 포틴은 의도적으로 수치 등을 숨긴 상태로 전달했고 이런 식으로 별다른 기술유출 없이 클럽을 개발하고 협업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됩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3D CAD 설계로 제작 방식이 바뀐 뒤부터 데이터를 그대로 전달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다 보니 고스란히 포틴만의 클럽 제작 노하우가 공개되어 버렸고 점차 고객사(?)들이 포틴에 더 이상 클럽 설계를 맡기지 않게 되면서 궁여지책으로 직접 제조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2001년부터 메이커이자 브랜드로서 공식 출범한 포틴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작품들을 시장에 하나, 둘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럽 메이커로서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기존의 대형 제조사들과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타케바야시는 틈새시장을 주목하게 되는데 가장 자신 있었던 분야가 아이언과 웨지였습니다.
포틴은 이 두 장르의 클럽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클럽의 강자가 될 수 있었죠.

포틴 RM 아이언
영세한 메이커로 출범하면서 골퍼들의 신뢰를 당장 얻기가 힘들었던 포틴은 일본에서 활동하던 프로 골퍼들에게 자신들이 제작한 클럽을 건네줍니다.
대대적인 마케팅과 광고를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로 인해 포친은 프로들이 사용하는 상급자용 클럽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클럽 시장에 알려진 포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평생을 클럽 제작자로 살아온 타케바야시의 골프 철학은 누구라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골프클럽을 제작하는 것이었고 그런 의지를 담아 브랜드 로고도 제작합니다.
이글과 알바트로스, 버디 등 골프용어에 착안해 가벼우면서도 다루기 쉬운 클럽이라는 뜻으로 새의 날개를 모티브로 삼아 깃털 모양의 로고가 탄생했고 포틴의 골프클럽에는 이 깃털 모양이 새겨지게 됩니다.

포틴 HI-877 하이브리드
기존 클럽보다 훨씬 스핀이 잘 걸리는 웨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려고 노력했던 타케바야시는 MT-28 웨지를 선보였는데 자사의 첫 번째 히트작으로 기록되면서 포틴은 더 이상 클럽 디자인 회사가 아닌 제조사로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T-28 웨지는 클럽헤드의 무게 배분을 좀 더 보완한 명작 RM 시리즈로 거듭나 현재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MT-28 웨지
이어서 선보인 HI-858 드라이빙 아이언을 어니 엘스가 디 오픈에서 들고나와 우승하면서 신생 브랜드로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포틴은 후속작인 HI-660 드라이빙 아이언을 연이어 발표합니다.
아울러서 당시 PGA 정상을 달리고 있던 데이비드 듀발과 저스틴 레너드 역시 이 후속 모델을 사용하면서 포틴 골프는 클럽메이커로서 좀 더 확실한 지명도를 얻게 됩니다.

포틴 HI-858 아이언
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투어 프로가 스폰서십을 받지 않고 직접 클럽을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인데 그만큼 포틴의 우수한 성능과 퍼포먼스가 입증된 셈입니다.
브랜드로서 출발은 뒤늦었지만 20여 년간 다양한 메이저 브랜드들과 함께 일하면서 쌓인 경험이 투어에서 즉시 사용 가능한 골프클럽을 제작하는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죠.
2001년 첫 출시된 포틴 웨지는 이듬해 곧바로 일본 투어 대회 사용률 1위에 오르며 투어프로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포틴이 출시한 웨지는 공의 표면을 깎을 정도로 엄청나게 스핀이 잘 들어갔는데 아마추어 골퍼들도 그린에서 공을 세우거나 백 스핀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것이죠.
클리브랜드와 타이틀리스트 보키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을 당시 포틴은 강력한 스핀력을 자랑하는 MT-28과 후속작인 RM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골프 시장에서 웨지 명가로 거듭납니다.

포틴 RM 4 웨지
순조롭게 라인업을 추가하며 토털 골프 메이커로 거듭난 포틴은 드라이버, 유틸리티, 퍼터까지 서서히 영역을 확대했고 풀 라인업을 갖춘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시장 확대에 한계도 느끼게 되는데...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14개 클럽 포틴
웨지를 비롯해 독창적인 클럽들을 선보이며 도약하던 포틴 골프는 2008년 다이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던 글로브라이드에 전격적으로 인수합병(M&A) 됩니다.
최고의 클럽 제작을 지향하던 포틴이었지만 재정을 비롯해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던 상황과 투어 프로들이 사용하는 상급자용 클럽 제조사로서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던 글로브라이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성사된 것이었죠.

소규모 공방으로 시작해 OEM 업체로서 클럽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던 포틴 골프 창업자 타케바야시.
아마추어 골퍼로서 그리고 현대 골프클럽 제작에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그는 지난 2013년 안타깝게도 64세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합니다.
살아생전에 그는 클럽 제작가로서 아마추어 골퍼들의 클럽 교체 주기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골프클럽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바꾸는 것이 아니고 스윙 감이 좋고 컨디션이 좋을 때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스윙 감이 좋지 않을 때 딱 맞는 클럽을 선택하면 나쁜 스윙이 그대로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며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철에 클럽을 구입하기보다는 날씨가 따뜻하고 몸이 충분히 돌아가는 환경에서 선택하는 좋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잘 쳐왔던 클럽을 더 이상 칠 수 없게 됐을 때 교체를 고려해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4번 아이언을 잘 사용해왔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용하기 불편함을 느낀다든가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루기 힘들었던 클럽을 역시 칠 수 없을 경우에는 무조건 바꾸기보다는 골퍼 자신의 기술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더 크기 때문에 스윙 연습에 좀 더 치중할 것”을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포틴 #포틴 웨지 #포틴 아이언 #fourteen #rm-4 #fourteen_wedge #골프 이야기 #골프 브랜드 #골프타임 #golftime
라운드에 나선 골퍼가 플레이를 할 때 사용 가능한 골프클럽은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모두 14개입니다.
이 14개(Fourteen)의 골프클럽을 전면에 내세운 골프 브랜드 포틴은 플레이에서 사용 가능한 클럽의 숫자뿐만이 아니라 최고의 골프클럽을 지향한다는 뜻도 담고 있지요.

포틴(Fourteen)은 일본의 골프 클럽 디자이너이자 설계자인 타카미츠 타케바야시 (Takamitsu Takebayashi)에 의해 1981년 설립된 브랜드입니다.
미국에 핑을 설립한 카스텐 솔하임과 클리브랜드 골프를 창업한 로저 클리브랜드가 있었다면 일본엔 이 타케바야시가 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골프클럽의 개발과 설계에 있어 뛰어난 감각과 아이디어를 지닌 인물이있죠.

타카미츠 타케바야시 (Takamitsu Takebayashi)
1949년생인 타케바야시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요코오상사의 골프 사업부에 취업해 클럽 디자인과 개발 업무를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클럽 제작과 인연을 맺습니다.
목표의식이 뚜렷했던 그는 30살이 되기 전 창업하기로 마음먹는데, 입사 8년 만인 1981년 독립하면서 조촐하게 작은 공방으로 출발합니다.

역대 포틴 클럽 전시관
당시 퍼시몬을 주재료로 우드 클럽 제작을 시작한 타케바야시는 특유의 섬세함과 열정으로 꽤 괜찮은 클럽 제작자로 점차 이름을 알려가기 시작합니다.
드라이버의 소재가 감나무에서 스틸 헤드로 바뀌어가던 80년대 당시 타케바야시는 이미 헤드 체적이 500cc였던 드라이버 모델을 시험 삼아 만들었을 정도로 그는 안목 있는 클럽 제작자였습니다.
이후 업계에서 소문난 클럽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타케바야시는 80년대 초반 최초로 중공구조 아이언의 개념을 설계하고 직접 디자인했는데...
수년 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요코하마고무가 보유한 클럽 제조사 PRGR(프로기어)와 협업하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중공구조 아이언 ‘인 테스트’를 세상에 내놓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합니다.
인테스트 아이언
원래 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타케바야시는 고교 3학년 재학 중 골프광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됩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골프로 20대 중반인 1975년 홍콩 오픈 골프 대회에서 최고 아마추어상을 받고 1977년 일본 오픈 골프 대회에서도 역시 아마추어로서 우승할 정도로 남다른 골프 실력도 보유했던 타케바야시는 이 당시 점보 오자키와 한 조로 투어를 치르기도 했는데 엄청난 비거리로 그린을 평정하던 오자키의 모습에 투어프로의 길보다는 제작자의 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는 회사 설립 후 야마하와 프로기어(PRGR), 던롭 골프, 다이와 골프 등과 협업하며 혁신적인 클럽들을 선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각과 경험에 의한 제조방식에서 탈피해 중심 설계, 관성 모멘트 등 클럽의 물리적인 특성을 수치화하고 계량화시켜 클럽 제작에 반영한 디자이너로 그 공로를 인정받습니다.
포틴이 내로라하는 일본의 골프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선보였던 클럽들은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 클럽이었던 야마하 SX-25와 1980년대 가장 많이 판매된 아이언으로 기록된 PRGR 500 아이언 시리즈 및 인 테스트 아이언, 세계 최초의 두랄루민 헤드로 제작된 던롭 DDH Super240 드라이버 등이 있습니다.
야마하 SX-25
야마하의 의뢰로 제작한 SX-25 아이언은 투어프로 스콧 심슨(Scott Simpson)이 1987년 US오픈에서 사용하고 우승하면서 포틴은 클럽 디자인 업체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엉뚱하게도 3D 설계기술(CAD)이 등장하면서 타케바야시는 보유한 기술이 고스란히 유출될 수 있는 OEM 생산방식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데...
당시는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 골프 클럽을 설계할 때죠.
금형과 도면을 함께 제공했던 포틴은 의도적으로 수치 등을 숨긴 상태로 전달했고 이런 식으로 별다른 기술유출 없이 클럽을 개발하고 협업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됩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3D CAD 설계로 제작 방식이 바뀐 뒤부터 데이터를 그대로 전달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다 보니 고스란히 포틴만의 클럽 제작 노하우가 공개되어 버렸고 점차 고객사(?)들이 포틴에 더 이상 클럽 설계를 맡기지 않게 되면서 궁여지책으로 직접 제조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2001년부터 메이커이자 브랜드로서 공식 출범한 포틴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작품들을 시장에 하나, 둘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럽 메이커로서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기존의 대형 제조사들과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타케바야시는 틈새시장을 주목하게 되는데 가장 자신 있었던 분야가 아이언과 웨지였습니다.
포틴은 이 두 장르의 클럽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클럽의 강자가 될 수 있었죠.
포틴 RM 아이언
영세한 메이커로 출범하면서 골퍼들의 신뢰를 당장 얻기가 힘들었던 포틴은 일본에서 활동하던 프로 골퍼들에게 자신들이 제작한 클럽을 건네줍니다.
대대적인 마케팅과 광고를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로 인해 포친은 프로들이 사용하는 상급자용 클럽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클럽 시장에 알려진 포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평생을 클럽 제작자로 살아온 타케바야시의 골프 철학은 누구라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골프클럽을 제작하는 것이었고 그런 의지를 담아 브랜드 로고도 제작합니다.
이글과 알바트로스, 버디 등 골프용어에 착안해 가벼우면서도 다루기 쉬운 클럽이라는 뜻으로 새의 날개를 모티브로 삼아 깃털 모양의 로고가 탄생했고 포틴의 골프클럽에는 이 깃털 모양이 새겨지게 됩니다.

포틴 HI-877 하이브리드
기존 클럽보다 훨씬 스핀이 잘 걸리는 웨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려고 노력했던 타케바야시는 MT-28 웨지를 선보였는데 자사의 첫 번째 히트작으로 기록되면서 포틴은 더 이상 클럽 디자인 회사가 아닌 제조사로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T-28 웨지는 클럽헤드의 무게 배분을 좀 더 보완한 명작 RM 시리즈로 거듭나 현재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MT-28 웨지
이어서 선보인 HI-858 드라이빙 아이언을 어니 엘스가 디 오픈에서 들고나와 우승하면서 신생 브랜드로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포틴은 후속작인 HI-660 드라이빙 아이언을 연이어 발표합니다.
아울러서 당시 PGA 정상을 달리고 있던 데이비드 듀발과 저스틴 레너드 역시 이 후속 모델을 사용하면서 포틴 골프는 클럽메이커로서 좀 더 확실한 지명도를 얻게 됩니다.
포틴 HI-858 아이언
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투어 프로가 스폰서십을 받지 않고 직접 클럽을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인데 그만큼 포틴의 우수한 성능과 퍼포먼스가 입증된 셈입니다.
브랜드로서 출발은 뒤늦었지만 20여 년간 다양한 메이저 브랜드들과 함께 일하면서 쌓인 경험이 투어에서 즉시 사용 가능한 골프클럽을 제작하는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죠.
2001년 첫 출시된 포틴 웨지는 이듬해 곧바로 일본 투어 대회 사용률 1위에 오르며 투어프로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포틴이 출시한 웨지는 공의 표면을 깎을 정도로 엄청나게 스핀이 잘 들어갔는데 아마추어 골퍼들도 그린에서 공을 세우거나 백 스핀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것이죠.
클리브랜드와 타이틀리스트 보키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을 당시 포틴은 강력한 스핀력을 자랑하는 MT-28과 후속작인 RM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골프 시장에서 웨지 명가로 거듭납니다.

포틴 RM 4 웨지
순조롭게 라인업을 추가하며 토털 골프 메이커로 거듭난 포틴은 드라이버, 유틸리티, 퍼터까지 서서히 영역을 확대했고 풀 라인업을 갖춘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시장 확대에 한계도 느끼게 되는데...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14개 클럽 포틴
웨지를 비롯해 독창적인 클럽들을 선보이며 도약하던 포틴 골프는 2008년 다이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던 글로브라이드에 전격적으로 인수합병(M&A) 됩니다.
최고의 클럽 제작을 지향하던 포틴이었지만 재정을 비롯해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던 상황과 투어 프로들이 사용하는 상급자용 클럽 제조사로서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던 글로브라이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성사된 것이었죠.
소규모 공방으로 시작해 OEM 업체로서 클럽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던 포틴 골프 창업자 타케바야시.
아마추어 골퍼로서 그리고 현대 골프클럽 제작에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그는 지난 2013년 안타깝게도 64세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합니다.
살아생전에 그는 클럽 제작가로서 아마추어 골퍼들의 클럽 교체 주기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골프클럽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바꾸는 것이 아니고 스윙 감이 좋고 컨디션이 좋을 때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스윙 감이 좋지 않을 때 딱 맞는 클럽을 선택하면 나쁜 스윙이 그대로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며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철에 클럽을 구입하기보다는 날씨가 따뜻하고 몸이 충분히 돌아가는 환경에서 선택하는 좋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잘 쳐왔던 클럽을 더 이상 칠 수 없게 됐을 때 교체를 고려해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4번 아이언을 잘 사용해왔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용하기 불편함을 느낀다든가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루기 힘들었던 클럽을 역시 칠 수 없을 경우에는 무조건 바꾸기보다는 골퍼 자신의 기술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더 크기 때문에 스윙 연습에 좀 더 치중할 것”을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포틴 #포틴 웨지 #포틴 아이언 #fourteen #rm-4 #fourteen_wedge #골프 이야기 #골프 브랜드 #골프타임 #golf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