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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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재에서 황제로 타이거 우즈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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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대관식



“스포츠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번 운동선수”

 

그를 논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 이제 막 데뷔를 앞뒀던 타이거 우즈는 대성할 전제 조건으로 최고의 실력과 스타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아마추어시절부터 적수가 없었던 이런 그를 스폰서들이 가만 놔 둘리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나이키의 창업자 필립 나이트의 관심과 정성은 대단했다.


 필립 나이트


“타이거 우즈는 스포츠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그로 인해 골프에 대한 세간의 통념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반열로 종목을 초월한 선수가 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농구의 마이클 조던, 축구의 호나우도 등 종목별로 슈퍼스타들을 영입해 마케팅을 펼쳐가던 나이키의 입장에서 바라본 타이거 우즈는 골프의 미래 그 자체였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었고 5년 4천만 달러라는, 지금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금액으로 계약에 성공하며 붙박이 스폰서로서의 시작을 알린다.

 


뿐만 아니라 클럽제조사에서는 아쿠쉬네트와 5년 2천만 달러를 제시해 타이거 우즈와 함께하는데 성공한다. (프로데뷔 초창기 타이거 우즈가 사용했던 드라이버는 킹코브라와 스틸 샤프트가 장착된 타이틀리스트 975D 모델이었다.)

 

스틸샤프트가 장착된 타이틀리스트 975D


"앞으로 쌓일 내 재산을 관리할 회계사 관리를 위해 회계 공부를 해야겠다."

 

프로진출을 선언한 뒤 밝혔던 당찬 포부처럼 그가 현재까지 벌어들인 돈은 알려진 단위로만 조 단위인데 대략 2조원 내외 정도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확실한 것은 우승 상금으로 거둬들인 금액만 수천억대에 이르고 25년이 넘는 프로생활 동안 각종후원금과 광고출연으로 벌어들인 액수 또한 1조원을 가뿐하게 넘긴다는 점이다.

 

1996년 여름 프로에 데뷔한 뒤 PGA 3승을 가볍게 거둔 타이거 우즈는 이듬해 4월에 열렸던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시작으로 전 세계 골프계를 그야말로 뒤집어 놓기 시작한다.

 

마스터스 토너먼트


백인들의 독무대였던 마스터스에 나서는 21살의 흑인골퍼로서, 기존의 어떤 신인프로보다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기에 기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긴 했지만, 오버하는 경향이 강한 언론들의 요란스러운 보도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타이거에 대한 유례없는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997년도 스포츠 잡지 표지사진


당시 중계권을 갖고 있던 케이블방송의 시청률은 물론, 관람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가고자 했던 엄청난 갤러리들의 숫자로 인해 티켓은 장당 7,000달러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약속된 단체 티켓을 못 구해 권총 자살하는 사람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1997년 봄의 오거스타 내셔널은 정말 뜨거웠는데 이때 세워진 14.1% 이르는 시청률과 단일대회 4,400만 시청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매일 18홀 1라운드씩 4일간 4라운드로 펼쳐진 이 경기에서 첫 날은 부진했지만, 대회 이틀째 되는 날부터 타이거는 오거스타(골프장)를 말 그대로 초토화시켜버린다.

 

파 5를 파 4홀처럼, 파 4홀을 파 3홀처럼 플레이하던 타이거 우즈는 대회에 참여한 투어 프로들과 갤러리들 그리고 대회 관계자들을 경악시키며 합계 18언더, 2위와는 무려 12타차로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비교 불가능한 비거리, 정확한 퍼팅, 압도적인 경기운영.. 이제 막 아마추어 딱지를 떼고 프로골퍼로서 치르는 첫 번째 메이저대회가 과연 맞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세계 골프계는 놀라움을 넘어 전율과 함께 쇼크 상태에 빠졌다.

 

마스터스를 분기점으로 삼아 PGA와 다른 메이저 대회 사냥(?)에 본격적으로 나선 타이거 우즈는 마치 전성기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처럼 천하무적 그 자체였고 폭주하는 기관차였다.

 

메이저 대회 18승을 기록하며 전설로 남아있던 잭 니클라우스 조차 나를 넘어설 골퍼라고 인정할 정도로 군계일학의 활약과 함께 무려 683주간 세계 골퍼 랭킹 1위를 고수한다. (2위는 331주간 1위 타이틀을 갖고 있던 그렉 노먼)


 

 타이거 우즈와 그렉 노먼

 

97년도에 2백만 달러로 상금랭크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15년 동안 총 10번의 상금 왕을 차지했으며 연간상금 천만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골퍼가 된다. 타이거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7년간 142개 투어에 출전하는데,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컷 통과 후 본선에 오른 기록을 갖고 있다.

 

골프는 투어에 출전한 프로골퍼들 중에 컷 오프를 통과한 뒤 본선에 오르면 대회가 마련한 상금을 우승자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배분받는 방식이다.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 골프를 하면서 이 오랜 기간 동안 타이거는 금액을 떠나 자신이 뛴 모든 투어에서 상금을 챙겼다는 얘기다.

 

4대 메이저대회 15승, PGA 투어 82승을 올린 그는 90%가 넘는 컷 통과율과 22%가 넘는 승률, TOP 10 확률은 참가횟수의 절반을 넘기는 55%로 골프에 관한한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타이거 우즈 드라이버 연속동작


타이거 우즈의 등장이후 골프는 장비와 규칙, 우승 상금을 포함한 총상금 그리고 골프코스에 변경까지 모든 것에 변화를 가져온다.

 

단적인 예로 1990년도에 시즌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한 골퍼는 단 2명에 불과했으나, 정확히 20년 뒤인 2010년도에는 무려 107명의 프로골퍼가 시즌상금으로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다. 시대를 타고난 황제 타이거 우즈 덕분에 그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수많은 PGA 투어프로들이 그와 함께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데뷔 초기 투어골퍼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또 다른 의미의 황제였다.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다리를 잃을뻔한 교통사고를 겪은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건 골프팬들만이 아니라 PGA와 투어프로골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다르긴 했지만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 같은 전설들조차도 이런 엄청난 저변확대와 전 지구적 흥행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타이거 슬램 


프로골퍼로서 등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타이거는 월등한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극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승부가 정말 많았던 골퍼였다. 골프에서 4대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면 그랜드슬래머로 인정을 받는데, 타이거 우즈는 그 어렵다는 4대 메이저 대회를 2년에 걸쳐 연속으로 우승해버린 대기록을 갖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시즌에 이룩한 것으로 이름하여 ‘타이거 슬램’이라 부른다. U.S 오픈을 시작으로 영국의 디 오픈, PGA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까지 대회가 개최되는 순서대로 제패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시작점이었던 U.S 오픈의 경우 2위와의 격차가 무려 15타차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거두었고, 두 번째 메이저 스케줄인 디 오픈을 우승하면서 PGA 챔피언십과 마스터스를 이미 우승해 본 타이거는 이 때 이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상태였다. 그러고도 연이은 스케줄에 따라 참가한 PGA 챔피언십과 마스터스에서 끝내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오거스타 내셔널


괴물 같은 타이거 우즈의 등장 이후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은 개장 68년 만인 2002년에 전장을 315m로 늘였고, 다시 2011년 증축에 착수해 총 코스길이가 6,716m가 되었다.

 

골프장의 길이를 늘려도 타이거 우즈와 그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프로들의 전체적인 실력향상과, 평균적으로 길어진 골퍼들의 비거리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골프협회는 골프공의 반발력을 제어하는 것을 논의한다.

 

타이거의 수많은 우승 중에서도, 그 많은 극적인 우승 중에서도 자신의 스폰서였던 나이키를 마치 홍보라도 하듯 승리한 대회로 2005년의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꼽힌다. 대회 마지막 최종 라운드에서 크리스 디마르코와 맞붙었는데, 1타차로 앞서고 있던 타이거 우즈가 16번 홀에서 보여준 칩샷은 골프사에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으로 남았다.


 

클로즈업으로 중계화면에 잡힌 이 장면으로 나이키가 누린 광고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가 등장한 뒤 세계 골프계는 타이거로 해가 뜨고 타이거로 해가 졌다고 할 정도로 우승을 못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는데,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양용은에게 일격을 당한 일이 세계 스포츠뉴스 이변 TOP 10에 꼽힐 정도였다.

 

천재골퍼로 이름을 날리던 타이거 우즈는 약관 20대에 어느덧 그렇게 골프황제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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