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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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이틀리스트 Pro V1 탄생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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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 V1


지난 수세기에 걸쳐 변신을 거듭해 온 골프공은 정확히 2000년을 기점으로 지금 현재 전 세계 골퍼들이 사용하고 있는 골프공으로 정형화된다. 그 후 20년이 넘는 세월을 관통하는 동안 골프공 제작에 있어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 볼이 바로 타이틀리스트 프로(Pro) V1이다. 


첫 번째 Pro V1 모델(2000)


1935년 자사의 첫 번째 골프공을 출시하고 65년 만에 비로소 타이틀리스트가 골프공으로 No.1의 자리에 오르는데 기여한 Pro V1은 5년간의 꽤 긴 개발기간을 거친 끝에 당초 발표 예정일보다 일찍 서둘러 공개된다. 90년대 중반부터 개발이 시작됐다는 얘기인데 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타이틀리스트가 이 볼을 출시하기 전까지 골프공시장에서 주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볼은 발라타공이었다. 이 골프공은 중심코어내부가 액체로 채워져 있었고 이 코어를 야구공처럼 여러 겹의 고무줄로 팽팽하게 감싼 후 표면에 발라타 나무 진액를 입힌 형태였다.


발라타 공의 내부 


내구성이 아쉬웠지만 부드러운 느낌에 스핀을 생성하기 쉬웠던 이 발라타 볼을 당시의 프로골퍼들은 투어에 많이 사용했다. 


탑 플라이트 스트라타


80년대 중반 탑 플라이트 골프공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던 스팔딩은 표면이 우레탄으로 덮여 있고 액체가 아닌 솔리드 코어로 되어있는 골프공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솔리드(solid)란 고체를 뜻하는데 이 볼이 진화를 거듭해 90년대 모델명 스트라타(STRATA)라는 이름으로 시판 중이었다.


탑 플라이트 솔리드 코어 골프공


당시 PGA에서 맹활약하고 있던 마크 오메라가 이 볼로 1998년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거두는데 바로 전년도 우승자이자 아직까지 발라타 볼을 사용하고 있던 타이거 우즈가 오메라가 사용하던 볼을 눈여겨보게 된다.


마크 오메라


타이거 우즈보다 무려 18살이 많으면서도 놀라운 비거리와 환상적인 스핀을 보여주던 이 볼이 바로 솔리드 코어에 우레탄 소재로 제작된 탑 플라이트 스트라타였던 것이다.


나름 준비들은 하고 있었다. 타이틀리스트를 포함하여 볼을 제작하고 있던 골프공 브랜드들은 발라타 볼이 아닌 솔리드(고체) 코어에 표면이 우레탄으로 되어 있는 볼을 저마다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대열에는 타이거 우즈의 메인 스폰서이자 골프용품과 관련해 새 상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나이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이키가 브리지스톤 골프와 협업해 개발한 골프공


아직까지 클럽과 볼 등에 이렇다 할 제품이 없는 신생업체로서 기술력이 부족했던 나이키는 일본의 브리지스톤 골프와 협업으로 골프공 개발을 진행 중이었는데 타이거 우즈의 강력한 요청으로 수정에 재수정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그의 요구가 상당부분 반영 된 볼을 완성해 낸다. 2000년 그 해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비슷한 시기 비밀리에 우레탄 골프공을 준비하고 있던 타이틀리스트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 해 6월 페블비치에서 열렸던 US오픈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가 어니 엘스를 무려 15타 차이로 꺾고 우승을 거두는데 그가 대회에 사용한 나이키 골프공이 PGA 투어 골퍼들로 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U.S 오픈


타이거 우즈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엄청난 비거리와 환상적인 스핀을 구사하는데 있어 기존의 그 어떤 골프공보다 반응이 뛰어났음을 지켜보는 프로골퍼들이 바로 직감하면서 시중에 출시예정이었던 이 나이키볼은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나이키는 아직까지 이 골프공을 당장 대량으로 출시할 준비가 안 되어있었고 연말쯤이나 되서야 본격 시판에 나설 예정이었다. 저무는 발라타 공의 시대를 뒤로하고 5년에 걸친 세월동안 작심하고 볼을 개발해왔던 타이틀리스트는 이듬해 봄 시즌에 맞춰 선보일 예정이었던 새로운 골프공의 출시일정을 갑자기 바꾼다.


나이키 골프공의 성능을 눈으로 지켜본 상황에서 더 이상 공개를 늦춰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시기를 고르던 타이틀리스트는 마침내 2000년 10월 가을에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PGA 투어 대회를 D-Day로 잡는다.



예비 라운드에 나선 투어골퍼들을 위해 타이틀리스트는 한꺼번에 400더즌(한 더즌은 12알)의 Pro V1을 준비했고 이 볼을 쳐본 투어 골퍼들 중에 무려 47명이 이 볼을 선택해 투어에 참가하는데 마침 투어 우승자도 Pro V1을 사용한 끝에 우승컵을 거머쥔다.


발라타 공과 같은 부드러움을 선사하면서도 스핀을 생성하기 쉬웠으며 기존의 발라타 공에 비해 내구성까지 좋았던 이 볼은 등장이후 투어골퍼들에 의해 앞 다퉈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의 시차로 나이키 역시도 그간 준비해왔던 골프공을 발표하지만 이미 입소문을 타고 골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볼은 타이틀리스트 Pro V1이었다. 아울러 나이키는 이제 막 자사의 첫 번째 공을 출시한 것이었고 타이틀리스트는 반세기 넘게 골프공을 전문으로 제조하고 시판해온 전통 있는 골프 브랜드였다는 점도 컸다.



그렇다면 10년 먼저 우레탄 솔리드코어 볼을 생산하고 시판해온 스팔딩은 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오늘날 골프용품 시장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것일까?


사실 탑 플라이트는 90년대 말까지 골프공시장의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브랜드였다. 스팔딩의 골프용품 사업에서 이 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전체매출의 절반을 넘어서는 효자상품이었지만 문제는 경영진의 판단실수로 재정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탑 플라이트 골프공 사업부를 캘러웨이로 넘긴 스팔딩은 스포츠 용품사업을 대폭 축소하며 현재 농구공과 소프트볼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나이키 투어 어큐러시


나이키 역시도 타이거 우즈를 앞세워 20년 동안 골프용품 사업을 펼쳐왔지만 끝내 시장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것은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를 함께하면서 타이거 슬램을 달성한 골프공이 바로 나이키 투어 어큐러시(Nike Tour Accuracy)였다는 점이다. 


나이키 투어 어큐러시 CF


기술과 경험이 부족했을 뿐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단기간내에 골프공에 또 다른 한 세대의 시작을 알리며 본격적인 솔리드 코어 골프공 시대를 연 나이키였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결국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


한편 타이틀리스트 Pro V1은 발표이후 지금까지 순항을 이어오고 있다. Pro V1이라는 명칭은 골프공 개발당시 코드명이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제품명으로 사용한 것이다. Pro는 ‘Professional’(프로페셔널)을 의미하고, V는 합판인 ‘veneer’(베니어)를 의미하며, 숫자 1은 최초의 제품이라는 의미다.


제품명처럼 Pro V1 골프공은 시각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얇은 우레탄 표면이 특징이다. 현 시점 많은 골퍼들이 선호하는 볼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장 비싼 골프공이기도 하다. 우레탄 골프공과 설린 골프공이 주류인 시대. 과연 업계에서 준비 중인 다음 세대 골프공은 어떤 소재와 재질의 골프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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